『우리』은 처음부터 많이 알기를 요구하지 않고, ‘완벽한 질서는 왜 인간을 지우는가’를 자기 상황에 맞게 확인하는 길을 연다. 흐름은 단순한 항목 나열보다 '왜 완벽한 질서는 인간을 지우는가'에서 잡은 관심을 '숫자가 이름을 대신할 때 인간은 무엇을 잃는가'의 구체적 점검으로 옮기는 쪽에 가깝다. '숫자가 이름을 대신할 때 인간은 무엇을 잃는가'를 읽을 때 자신의 사례를 적어 보면, ‘완벽한 질서는 왜 인간을 지우는가’라는 주제가 추상적인 말보다 구체적인 선택으로 다가온다. 장면마다 무엇을 외울지보다 무엇을 확인할지가 앞에 놓여 있어, 『우리』은 혼자 읽어도 부담이 적다. 『우리』이 남기는 가장 큰 쓸모는 '완벽한 질서는 왜 사랑을 견디지 못하는가' 같은 대목을 자신의 기록 방식으로 바꾸어 보게 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소개가 필요한 이유는 정보를 더 많이 쌓는 데 있지 않고, 이미 가진 자료를 어떤 순서로 볼지 정하는 데 있다. 낯선 주제일수록 '숫자가 이름을 대신할 때 인간은 무엇을 잃는가'처럼 구체적인 장을 먼저 확인하면, ‘완벽한 질서는 왜 인간을 지우는가’는 막연한 용어가 아니라 오늘 확인할 선택지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