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의 이리는 자주 오해되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난해한 상징소설로만도 읽히고, 우울한 중년 남자의 고백록으로만도 읽히며, 고상한 예술가가 세속 사회를 혐오하는 이야기로도 읽힌다. 그러나 그렇게 읽기 시작하면 우리는 곧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진동을 놓친다. 이 작품이 우리를 붙드는 이유는 단순히 한 남자의 비극적인 심리 상태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의 얼굴로는 버틸 수 없다는 사실, 자기 안의 여러 목소리가 서로를 미워하고 또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복수성을 끝내 농담처럼, 음악처럼, 놀이처럼 다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이 아주 이질적인 형식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 안내는 황야의 이리를 줄거리 요약본처럼 다루지 않는다. 해리 할러라는 인물의 내면을 단순한 우울이나 실존적 고뇌라는 말로 뭉뚱그리지도 않는다. 대신 이 작품을 심리독해, 장면 해부, 상징 읽기, 인물 관계 분석, 오독 교정의 방식으로 천천히 펼쳐 본다. 늑대라는 비유가 왜 위안이 아니라 함정이 되는지, 헤르미네가 왜 연인이기 전에 거울인지, 춤과 재즈와 육체가 왜 타락이 아니라 수업인지, 마술극장이 왜 환상 장식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복수성을 시각화한 무대인지, 그리고 마지막에 모차르트의 웃음이 왜 이 소설의 가장 잔인하면서도 자비로운 답이 되는지를 따라간다. 만나는 독자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독자도 자기 기준을 다시 정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