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기술은 모든 문제를 풉니다." 한 세대의 생활을 바꾼 슈퍼앱 '손안'의 창업자 강이안은 그렇게 믿었다. 새벽에 주문하면 아침에 오고, 말만 하면 알아듣고, 혼자 사는 노모의 안부까지 대신 묻는 회사. 가입자 삼천만, 기업 가치 십이조. 그러나 그가 창업 초기에 짠 단 한 줄의 설계 사상—'효율적인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은 가장 성실한 청년을 가장 빨리 닳게 만들었고, 한 사람이 새벽 물류센터에서 쓰러졌다.
회사는 그 죽음을 '지병'으로 덮었고, 개혁을 선언한 창업자는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한 달 만에 잘렸다. 그리고 이 년 뒤, 회사가 무너졌을 때 강이안은 가장 낮고 가장 추운 자리로 돌아온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야간 상하차 계약직. 그가 죽인 청년이 서 있던 그 자리로.
이 소설은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와 반품 창고와 고객센터 헤드셋 앞에 앉은 한 사람이, 거창한 혁신이 아니라 매일 지키는 작은 약속—끝까지 듣는 일과 시스템이 못 본 것을 적는 일—으로 무너진 기술과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이야기다. "고칠 수 있는 것은 버리지 않는다. 물건도, 사람도, 마을도." 골목 수리공의 오십 년이 가르쳐 준 그 한마디를 따라, 기술의 시야가 골목에서 지구를 지나 우주까지 넓어지는 동안 기술의 책임도 꼭 그만큼 넓어져야 한다는 것을 한 사람의 죽음으로 배워 가는 회사의 기록.
가장 멀리 간 기술자는, 결국 사람 곁으로 돌아온 사람이었다.
본문 중에서
그는 가끔 생각한다. 이 회사를 살린 것은 자기가 아니라고. 회사가 버린 로봇을 주워 고치던 골목의 노인이, 반품 창고에서 제 물건을 훔치듯 가져가던 사장이, 세 번 지워진 보고서의 문장이, 일지에 달리던 퇴근 후의 패치 커밋들이, "이든이는 지병 없었다"는 볼펜 한 줄이, 폭설의 골목을 담요를 싣고 달린 사백 명이, "저도 흔들렸습니다"라는 고백 뒤의 침묵이, 그리고 접견실 유리 너머의 경고와 — 가족 없는 빈소의 사흘까지. 그 모든 부끄럽고 아픈 것들이 함께 살린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