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테스”와 “이름 없는 주드”의 작가 토머스 하디가 남긴, 그의 소설 가운데 가장 따뜻하고 다정한 작품. 하디는 잉글랜드 남서부의 가상 고장 ‘웨식스’를 무대로, 시골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과 그 위로 드리우는 운명의 그림자를 평생 써 온 작가다.
“앤을 사랑한 나팔수”에서 그 운명은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온다 — 넬슨과 트라팔가르, 봉화대와 의용군, 그리고 끝내 한 청년을 삼켜 버리는 머나먼 전쟁터. 그러나 하디의 눈길이 오래 머무는 곳은 거창한 역사가 아니라, 그 역사의 그늘에서 사랑하고 다투고 끝내 물러서는 작은 사람들의 마음이다. 가장 먼저 사랑한 사람이 늘 사랑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 가장 빛나 보이는 사람이 가장 한결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 — 오늘의 독자에게도 변함없이 사무치는 이 진실을, 하디는 익살과 연민, 그리고 끝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결말로 들려준다. 화려한 비극에 앞서 하디를 처음 만나기에 더없이 좋은, 웃음과 눈물이 함께 깃든 한 권이다.
본문 중에서
아버지가 든 촛불이, 작별의 미소를 띠고 문지방에서 돌아서는 존의 얼굴과 군복 위로 일렁이는 빛을 드리웠으니, 그의 등 뒤로는 검은 밤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어둠 속으로 잠겨 들었고, 전우들과 합류하러 가는 그 또랑또랑한 발소리의 울림이 다리 위에서 차츰 잦아들었다— 그렇게 그는, 스페인의 어느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에서 영영 침묵당 할 그날까지 제 나팔을 불기 위해,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