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모에게서 몸을 받고, 시대적 문화에서 언어를 받으며 수많은 관계 속에서 이름을 얻지만
자신의 숨을 깊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스스로의 중심을 얻는다.
꽃잎이 열릴 때 소리가 없는 것처럼, 사람의 인격도 조용한 시간 속에서 스스로의 방향을 찾는다.
나의 길은 누구의 반복도 누구의 모방도 아니다.그 길 위에서 인간은 자기만의 성품과 리듬을 따라
고유한 색으로 조용히 피어난다.
부모님과 자녀는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탯줄은 성장을 가로막는 끈이 아니라
내가 나라는 세상으로 나갈 때 한 번쯤 뒤돌아보게 만드는 지울 수 없는 따스한 흔적이다.
그 흔적을 붙잡으려 하지도 붙들어 두지도 않는다.
다만 떠나도 괜찮다고, 돌아보아도 괜찮다고, 조용히 등을 밀어주는 기억으로 남아 삶의 뒤편에서 오래 숨 쉬고 있다.
우리는 그 흔적 위에 우리만의 빛을 덧칠해 살아가는 존재다. 그리고 그 빛은 호흡의 고요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누군가는 우리의 육신을 세상으로 건네주기 위해 눈에 보이는 탯줄을 잘라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줄기는 그때부터 오히려 더 깊게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그 줄기는 피와 살이 아니라, 습관과 말투, 두려움과 용기 기억에 스며든 미세한 온도 같은 것들로 엮여 있다.
인간은 우주의 에너지 흙과 물, 뼈와 살로 빚어진 존재이면서 보이지 않는 결과 정으로 엮인 하나의 은밀한 우주다.
모든 생명은 살기 위해 숨을 쉬지만, 오직 인간만이 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호흡과 함께 서로의 마음을 불러내고
이어 붙이고 다시 되돌려 놓는다.
정은 물질 이전의 감각이며, 언어 이전의 숨결이다.
그러나 정은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빛과 어둠 사이, 하늘과 땅 사이, 음과 양 사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은은히 연결하고 있는 보이지는 않지만 끈끈한 다리다. 정이란 인간의 가슴 깊은 곳에서 천천히 모여드는 바람의 결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기억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인연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그것을 감정이라 말하지만, 나는 그것을 숨이 남긴 바람이라 부른다.
보이지는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고, 붙잡을 수 없으나 우리의 생을 움직이는 가장 오래된 리듬이기 때문이다.
정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투명한 다리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내면의 거울이다.
우리가 타인의 마음을 향해 내미는 따뜻한 기척은 사실 자신을 들여다보고 관찰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자신이 이전까지 믿고 바라보던 세계는 아직 껍질을 벗기 전 물속에서 성장하던 잠자리 유충의 시야와 같다.
그 세계는 탁한 물결 안에서만 완성되어 있고, 빛은 위에서 흔들리지만 닿지 않으며 움직임은
바닥을 기어다니는 범위로 제한된다.
유충은 자신에게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물의 저항을 세상의 전부로 착각한다.
수면 위에 하늘이 열려 있다는 것도 공기가 몸을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것도 상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면의 축적이 임계점을 넘으면 껍질은 더 이상 보호가 아니라 족쇄가 된다.
잠자리는 물을 떠나 껍질을 벗고 전혀 다른 밀도의 세계로 몸을 밀어 올린다.
나비의 애벌레 또한 마찬가지다.잎사귀 위를 기어다니던 감각은 고치 안에서 해체되고
그 해체를 통과한 뒤에야 우주라는 차원을 얻게 된다.
정화와 통찰을 거친 내면 역시 이와 같다.
껍질 안에서의 안전은 사라지지만, 그 대신 이전에는 감각 할 수 없던 넓이와 깊이 방향과 자유가 열린다.
그제서야 사람은 알게 된다.
자신의 생각으로 믿어왔던 세계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그 세계는 보호막이었으나 동시에 어둠의 시야였음을
그리고 진짜 삶은 껍질을 벗은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는 사실을 내면의 정화가 시작될 때
그 껍질에는 미세한 금이 간다.
그것은 위기가 아니라, 전조이며 무너짐이 아니라 깨어남의 신호다.
호흡이 깊어질수록 그동안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세계관의 벽은 조용히 얇아져 간다.
마침내 껍질이 열리는 순간 전혀 다른 차원의 빛과 공기를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