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문학이 시작되는 자리에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있다. 기원전 8세기경, 리라를 무릎에 얹은 음유시인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이 노래는 트로이아 전쟁을 마친 한 사내가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십 년을 그린다.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힘으로 적을 압도하는 영웅이 아니라, 꾀와 인내로 운명을 견디고 끝내 이겨내는 영웅이다.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지략이 뛰어난"과 "참을성 많은"인 까닭이 여기 있다.
이야기는 곧장 흐르지 않는다. 아버지의 얼굴조차 모른 채 자란 아들 텔레마코스가 그 자취를 찾아 길을 떠나고, 요정 칼립소의 섬에 칠 년째 붙들려 있던 오디세우스가 영원한 젊음을 마다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아내가 기다리는 고향을 택한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사람을 돼지로 만드는 마녀 키르케, 노래로 뱃사람을 홀리는 세이렌, 산 자가 죽은 자를 만나는 저승까지—가장 화려한 모험담이 작품 한가운데 회상으로 놓이고, 그 앞뒤를 아들의 성장과 아버지의 귀환이 감싼다. 마침내 거지로 변장해 제 집 문턱에 앉은 오디세우스가 활시위를 단번에 메기는 순간, 긴 인내는 폭발적인 복수로 터져 나온다.
호메로스가 모험 그 자체보다 무겁게 다룬 것은 돌아온 자가 치러야 할 또 한 번의 싸움이다. 이십 년 만에 돌아온 주인을 알아보고 마지막 숨을 거두는 늙은 개, 발의 흉터를 더듬어 단번에 주인을 알아보는 유모, 그리고 끝까지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 오직 둘만이 아는 침대의 비밀로 남편을 시험하는 아내 페넬로페. 알아봄의 장면들은 이 작품에서 가장 인간적인 순간들이다. 그 바탕에는 손님을 신처럼 맞는 환대의 법도가 흐른다. 나그네를 어떻게 대하는가는 곧 그 사람이 신의 법 아래 사는 문명인인가를 가르는 시금석이며, 그 법을 짓밟은 구혼자들의 최후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무너진 질서가 제자리를 찾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오디세이아』는 바다 건너 먼 모험의 노래인 동시에, 결국 집이라는 가장 가까운 자리로 돌아오는 노래다. 오래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다시 서로를 알아보는 일의 어려움과 기쁨, 유혹 앞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의 무게, 아무리 멀리 떠돌아도 끝내 돌아가야 할 자리가 있다는 믿음. 이천팔백 년 전의 물음은 오늘도 똑같이 절실하다. 가장 먼 곳까지 떠돌았던 영웅의 여정이 흙을 만지는 늙은 아버지의 손을 다시 잡는 것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 존재인지를 다시 묻게 된다.
이 책은 구송 서사시 특유의 격조와 반복의 리듬을 살리면서도 현대 한국 독자의 호흡에 맞춰 옮긴 번역이다. "장밋빛 손가락의 새벽", "포도줏빛 바다" 같은 상투적 수식어와 정형구의 가락을 그대로 두어 노래로서의 결을 지켰고, 고유명사는 그리스어 원음에 가까운 표기로 통일했다. 직역의 어색함을 걷어내되 서사시의 장중함은 잃지 않으려 했다. 모닥불 앞에 앉아 음유시인의 노래를 듣던 그 옛 청중처럼, 독자가 이 오래된 이야기에 다시 한번 귀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