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방
A Room with a View
E. M. 포스터 장편소설
닫힌 방에 머물 것인가, 창을 열고 전망을 마주할 것인가. 한 세기를 건너 여전히 우리에게 같은 물음을 건네는, 영국 소설의 가장 환하고 따뜻한 고전.
20세기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E. M. 포스터가 1908년에 발표한 『전망 좋은 방』은, 인습의 두꺼운 휘장 뒤편에서 한 젊은 여성의 영혼이 깨어나는 과정을 더없이 섬세하고 경쾌하게 그려 낸 성장의 기록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엄숙한 질서가 서서히 금이 가던 에드워드 시대, 점잖음과 격식이 사람의 진심마저 옭아매던 그 세계에서, 포스터는 한 처녀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자그마한 내전(內戰)을 통해 한 시대가 다른 시대로 건너가는 문턱의 풍경을 포착한다.
이야기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하숙집에서 시작된다. 영국에서 온 처녀 루시 허니처치는 전망 없는 방을 배정받고 실망하는데, 같은 하숙집의 에머슨 부자가 선뜻 전망 좋은 제 방과 바꿔 주겠다고 나선다. 점잖은 영국 중산층의 눈에는 무례에 가까운 이 직설적인 친절이, 실은 작품이 끝내 옹호하려는 진실의 첫 씨앗이다. 피렌체의 눈부신 햇빛 아래에서 루시는 광장의 죽음을 목격하고, 보리밭 언덕에서 뜻밖의 입맞춤을 받으며, 제 안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흔들려 깨어나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인습의 화신과도 같은 사촌 샬럿이 그녀를 황급히 데려가면서, 그 깨어남은 채 피어나기도 전에 봉인되고 만다.
무대가 영국의 시골 마을로 옮겨지면, 루시는 교양 있고 세련되었으나 사람을 한 폭의 그림처럼 감상하고 소유하려 들 뿐인 세실 바이스와 약혼한 처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에머슨 부자가 바로 그 마을로 이사를 오면서, 봉인되었던 과거가 되살아난다. 정직한 마음과 점잖은 위선 사이에서, 진짜 자신과 남들이 기대하는 자신 사이에서, 루시는 거듭 거짓말을 쌓아 올린다. 조지에게, 세실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이 작품의 진짜 무대는 피렌체도 영국의 전원도 아닌, 바로 그렇게 흔들리는 한 사람의 내면인 것이다.
‘전망’과 ‘방’은 이 소설을 떠받치는 핵심 은유다. 방이 사람을 둘러싸 가두고 보호하는 인습의 공간이라면, 전망은 그 벽 너머로 펼쳐진 진실과 열정과 삶 그 자체다. 전망 없는 방에 만족하며 사는 것은 안전하지만, 그것은 곧 영혼이 좁은 벽 안에서 시들어 가는 일이기도 하다. 포스터가 평생의 화두로 삼은 “오직 연결하라”라는 신념, 곧 계급과 인습과 편견의 벽을 허물고 영혼이 영혼에 가닿아야 한다는 믿음이, 이 작품에서 가장 밝고 다정한 빛깔로 구현된다.
포스터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반어(反語)의 문체는 이 소설을 읽는 큰 즐거움이다. 그는 인물의 어리석음을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기기만을 또렷이 보여 주고, 독자로 하여금 루시의 망설임에 공감하는 동시에 그것을 꿰뚫어 보게 한다. 응접실 희극의 경쾌한 웃음과 영혼의 깊은 떨림이 한자리에 어우러지는 이 균형이야말로,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작품이 빛바래지 않는 까닭이다.
결국 『전망 좋은 방』이 건네는 것은 사랑 이야기의 설렘을 넘어, 자기 마음을 정직하게 마주하라는 다정하고도 단호한 권유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소설은 부디 닫힌 창을 열고 너른 전망을 향해 나아가라고 속삭인다. 그 권유는 에드워드 시대의 영국을 훌쩍 넘어, 여전히 인습과 체면 앞에서 제 진심을 미루어 두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조금도 낡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