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마흔 번의 계절이 창밖의 풍경을 바꿔놓는 동안, 제 손에는 늘 두 개의 세계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는 아이들의 거친 숨소리와 아픈 상처를 보듬던 보건실의 따스한 문턱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시어(詩語)들이었습니다. 2023년, 정든 교정을 뒤로하고 정년퇴임이라는 문턱을 넘으며, 비로소 그동안 모아온 마음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봅니다.
저에게 시를 쓰는 일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호흡과도 같았습니다. 등단 전, 아들과 함께 참여한 죽계백일장에서의 장원은 시 쓰는 즐거움을 일깨워주었고, 삼도어울마당 수상과 경상북도교육청 교원예능실기대회 금상은 문학을 향한 확신을 주었습니다. 특히 대한간호협회 간호문학상에서 〈내려놓기로 당선 수상했던 기억은 보건교사이자 문학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준 소중한 이정표였습니다. 이러한 성취를 거름 삼아 영주문인협회의 일원이 되었고, 2006년 ‘문예사조’로 등단하며 비로소 ‘작가’라는 무거운 이름을 가슴에 품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시인’의 삶과 더불어 지난 10년간 이어온 ‘시낭송가’로서의 활동은 시의 행간에 숨겨진 떨림을 목소리에 실어 나르는 기쁨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공연장에서 시를 통해 타인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눈빛을 나누던 순간들은 종이 위의 시를 살아 숨 쉬게 하는 경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 교직원들과 함께 꾸미며 찬사를 받았던 ‘시울림’ 공연의 감동 또한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이번 시집은 저의 첫 출간이자, 40년 보건교사 인생에 마침표를 찍고 작가로서 내딛는 새로운 첫걸음입니다. 시집 중간중간에는 보건교사로서의 삶을 담아 ‘건강 한 줄기’라는 쉬어가는 페이지를 넣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매일의 실천 속에 있다는 것을 나누고 싶어 월간《건강다이제스트》등을 참고하여 정성껏 갈무리했습니다. 영주문협을 비롯한 여러 지면에 발표했던 작품 중 유독 마음이 머물던 42편의 시에는 제가 사랑한 영주와 풍기의 흙내음, 소백산의 바람, 그리고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시집을 엮으며 비로소 깨닫습니다. 아이들의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아주던 그 손길이 실은 제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시의 몸짓이었음을 말입니다. 이제 하얀 가운을 벗고, 글자라는 붓을 들어 저만의 색깔로 세상을 그려보려 합니다. 부족한 제 글들이 누군가의 지친 마음에 작은 ‘연고’가 될 수 있다면 작가로서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남지 않았았으니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나의 시집을 정리하면서 해는 저물어가나 노을은 더 짙은 법입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곁에서 묵묵히 응원해준 가족들과 문학의 길을 함께 걸어온 영주문협 동료들, 영주 시낭송회 회원들, 영주문예대학 그리고 제 시의 원천이 되어준 모든 인연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지는 꽃도 아름답고, 새로 돋는 잎도 눈부신 계절입니다. 이제 저는 ‘시’라는 길 위에서 다시 시작해 보려 합니다. 부족한 제 글들이 지친 마음에 작은 연고가 될 수 있다면
작가로써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