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농 레스코』 — 사랑이 사람을 구원하는가, 파멸시키는가
한 청년이 있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신학교로 향하던 열일곱 살의 데 그리외. 그는 아미앵의 한 여관 앞에서 수녀원으로 보내질 처지의 한 여자를 본다. 그 한순간에 그의 이성도, 분별도, 앞날도 모두 무너진다. 마농 레스코. 사랑스럽고 다정하지만 쾌락과 풍요 앞에서는 거리낌 없이 변심하는 이 여자를 위해, 데 그리외는 가문을 버리고, 노름판의 사기꾼이 되고, 감옥을 탈출하고, 끝내 신대륙의 황량한 모래밭에 그녀를 손수 묻기까지 한다.
1731년 아베 프레보가 세상에 내놓은 이 짧은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풍기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다. 그러나 그 금지는 도리어 작품의 명성을 키웠고, 이후 마스네와 푸치니의 오페라를 비롯해 무수한 각색을 낳으며 300년 가까이 읽혀 왔다. 채 200쪽이 안 되는 이 작품이 그토록 오래 살아남은 까닭은, 그것이 던지는 질문이 끝내 낡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람을 구원하는가, 파멸시키는가. 우리는 자기 정념 앞에서 정말로 자유로운가.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그 목소리에 있다. 이야기는 데 그리외 자신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데, 그는 자기 죄를 고백하면서도 끊임없이 변호하고, 파멸을 한탄하면서도 어딘가 도취해 있다. 단죄와 도취가 한 문장 안에 뒤엉키는 그 격정의 어조에 독자는 절반쯤 넘어가고 만다. 정념에 휘둘리는 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인간, 이성을 갖추고도 자기 욕망을 변호하는 데만 그 이성을 쓰는 인간. 데 그리외는 계몽의 시대가 그린 가장 정직한 자화상 가운데 하나다.
마농은 또 어떤가. 우리는 그녀의 속을 끝내 직접 들여다보지 못한다. 모든 것이 데 그리외의 눈을 거쳐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악녀인가, 희생자인가, 아니면 가난을 견디지 못하는 한 인간일 뿐인가. 프레보는 그녀를 단죄하지도 미화하지도 않은 채, 그 모순 그대로 독자 앞에 던져 둔다. 바로 그 불투명함이 마농을 문학사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가장 논쟁적인 여성 인물로 만들었다.
이 작품은 18세기 프랑스 감상소설의 한 정점에 놓이며, 뒷날 루소를 거쳐 낭만주의로 이어지는 큰 흐름의 앞자리에 선다. 그러나 눈물과 영탄으로 가득한 정념의 드라마 밑에는 노름판의 속임수, 징세 청부인의 돈, 구빈원과 유배선 같은 당대 파리의 차갑고 구체적인 현실이 단단히 깔려 있다. 돈이 없으면 사랑도 무너진다는 그 냉혹한 진실에 발이 묶인 사랑 이야기. 정념의 소설이면서 동시에 가난의 소설인 이 이중성이, 이 작품을 단순한 연애담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수도원과 군대, 망명과 투옥을 오간 작가 프레보 자신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데 그리외의 격정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어쩌면 그가 쓴 가장 진실한 자서전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도덕을 가르치려던 이 이야기가 정작 우리 안에 남겨 놓는 것은 회개가 아니라, 모래 속에 묻힌 마농의 잊을 수 없는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깊은 아이러니이자, 가장 오래가는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