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이 나오는 서점
“이 서점에는 유령이 나온다.” 브루클린 기싱 거리의 한 헌책방 문 앞에 내걸린 이 팻말은 으스스한 괴담을 예고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떠도는 유령이란, 아직 읽히지 못한 위대한 책들이 책장 사이에 남긴 영혼이다. 셰익스피어와 칼라일과 휘트먼의 정신이 어둑한 골방마다 깃들어, 밤이면 어서 자기들을 읽어 달라 손짓하는 곳 ― 책 장수 로저 미플린은 제 가게를 그렇게 부른다.
크리스토퍼 몰리가 1919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책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더없이 다정한 연애편지다. 미플린은 틈만 나면 책을 예찬하는 수다를 늘어놓고, 어떤 마음의 병에는 어떤 책이 듣는다는 ‘문학 약전(藥典)’을 펼쳐 보인다. 수백 권의 실제 책과 작가의 이름이 폭죽처럼 터지는 그 책장 사이를 거닐다 보면, 독자 역시 어느새 책에 홀린 그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묘미는 그 평화로운 책방 위에 한 가닥의 첩보 스릴러가 포개진다는 데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휴전이 막 선포된 무렵, 한 독일계 약제사가 윌슨 대통령이 아낀다는 칼라일의 『크롬웰』 장정 속에 폭탄을 숨겨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책장에서 자꾸만 사라졌다 돌아오는 그 한 권의 책을 둘러싸고, 사랑에 빠진 젊은 광고쟁이 오브리 길버트의 어설픈 추격이 시작된다. 전쟁이 끝났으니 모든 음모도 함께 끝났으리라 믿고 싶은 사람들의 안도와 불안이 교차하는 그 시대의 공기가, 활극의 긴장 사이로 은근히 배어든다. “책은 폭발물”이라던 미플린의 농담이 마지막 장에서 진짜 폭발로 실현되는 순간, 책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그의 신조는 가장 섬뜩하면서도 가장 정확하게 증명된다.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들도 그저 활극의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책에 미친 이상주의자 미플린, 그 몽상가의 발을 땅에 붙들어 매는 다정한 아내 헬렌, 세상 모든 것을 광고 문구의 눈으로만 바라보는 청년 오브리, 책방에 불어든 한 줄기 젊은 바람 같은 처녀 티타니아, 그리고 마지막 순간 제 몸을 던지는 충직한 늙은 개 보크 ― 이들이 엮어 가는 이야기 속에서 문학과 상업, 낭만과 현실이 부딪치고 또 화해한다.
전작 『파르나소스 온 휠스』의 속편으로, 책 마차를 끌고 시골을 떠돌던 책 장수가 마침내 한곳에 뿌리내린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 크리스토퍼 몰리는 소설가이자 시인, 수필가이자 편집자로 평생 백 권이 넘는 책을 펴낸 미국 문단의 만물박사였고, 셜록 홈스 애호가 모임 ‘베이커 스트리트 비정규대’를 만든 둘도 없는 애서가였다. 그 책 사랑이 가장 따뜻하게 녹아든 작품이 바로 이 소설이다.
종이책의 운명을 두고 끝없는 부고(訃告)가 쓰이는 시대에, 헌책방을 두고 “인류의 꿈과 아름다움과 진기함을 사고파는” 일이라 일컫는 이 백 년 전의 소설은 외려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책에 푹 빠지면 다른 그 무엇도 걱정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미플린의 말처럼, 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의 서가에 한 자리를 마련해 두고 싶은 작고 따뜻한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