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보라
프리드리히 니체가 정신이 무너지기 직전, 마흔네 번째 생일에 펜을 들어 채 세 주 만에 써 내려간 마지막 산문. 이듬해 그는 토리노 거리에서 쓰러져 다시는 정신을 되찾지 못했으니, 이 책은 한 정신이 가장 환하게 타오르던 마지막 순간의 기록이자, 자기 생애와 저작 전체를 스스로 결산한 지적 자서전이다.
제목부터가 도발이다. '이 사람을 보라'는 빌라도가 가시관 쓴 예수를 군중 앞에 끌어내며 한 말. 니체는 그 복음서의 장면을 통째로 가져와, 그 자리에 자기 자신을 세운다.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나는 왜 하나의 운명인가」 같은 장 제목이 단번에 일러 주듯, 이 책은 자기를 인류사의 분기점으로 내세우는 거침없는 퍼포먼스다. 그러나 그 과장 밑에는 늘 반어와 익살이 흐른다. "나는 한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라고 외치는 바로 그 사람이, "차라리 어릿광대이고 싶다. 어쩌면 나는 어릿광대다"라고 적는다.
부제 "사람은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는가"가 책의 진짜 주제다. 신학적 사변 대신 그는 음식과 기후와 휴식과 음악을 이야기하고, 정신의 가치를 끝까지 몸의 언어로 풀어낸다. 자기 안의 병과 데카당스, 그리고 거기서 회복해 다다른 '위대한 건강'의 내력이 그 바탕을 이룬다. 이어 그는 『비극의 탄생』부터 『차라투스트라』,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에 이르는 자기 저작을 하나씩 들어 평하며, 운명애·영원회귀·힘에의 의지·모든 가치의 전도 같은 핵심 사상을 다시 벼려 낸다. 그리고 마지막 한 줄, "디오니소스 대 십자가에 못 박힌 자"로 책은, 그리고 사실상 그의 저술 생애 전체는 닫힌다. 고통과 파괴마저 끌어안고 삶을 긍정하는 정신과, 고통을 부정하며 피안을 약속하는 그리스도교가 마지막으로 맞세워진다.
이 책을 읽는 열쇠는 그 어조를 곧이곧대로도, 우습게도 받아들이지 않는 데 있다. 자기를 인류의 운명으로 내세운 이 책이 정작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를 떠나 각자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이다. "나를 잃고 그대들 자신을 찾아라." 거기에 『이 사람을 보라』의 가장 깊은 반어가 있다.
이 책은 니체 입문서로 권하기엔 위험하지만, 그의 다른 저작을 어느 정도 읽고 돌아오면 흩어져 있던 개념들이 한 사람의 목소리로 꿰어지는 경험을 안긴다. 정신이 꺼지기 직전의 한 인간이 남긴 이 결산을 광기의 전조로 읽든 한 사상의 정점으로 읽든, 이토록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내건 책은 사상사에 다시 없다. 이 판본에는 본문에 더해 니체가 손수 펴낼 채비를 갖춘 「디오니소스 디티람보스」를 비롯한 시편들이 함께 실려, 스스로를 '문장의 음악가'라 여긴 그의 또 다른 얼굴까지 만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