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4년까지 장준하 관련 자료를 비공개하기로 결정한 정부에 맞서
담당 조사관이 최초로 밝히는 사건의 전말과 진실!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실족 추락사했다고 알려진 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간 숱한 의혹과 소문이 무성했지만, 한 번도 사건의 전모가 제대로 밝혀진 적은 없었다. 그러던 차에 37년이 지난 2012년 8월 1일, 장준하 선생의 유골이 세상 빛을 보게 되면서 ‘진상규명 불능’으로 처리된 이 사건이 순식간에 언론과 세인의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1918년 평북 의주에서 태어난 장준하 선생은 대표적인 민족주의자 중 한 분으로, 한국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사상계』를 창간하여 대학생을 비롯한 지식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자유당 정권, 박정희 정권을 줄기차게 비판하면서 시대의 양심과 등불의 역할을 자처했으며 이 과정에서 스물일곱 번 연행되고 아홉 번 구속되는 등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러던 중 엄혹한 유신독재 시절, 민주 ‘제2차 민주회복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준비하던 중 거사 발표 3일 전인 그해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에서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당시 검ㆍ경은 장준하 선생의 사망원인이 ‘실족 추락사’라고 밝혔으나 실족사로 보기에는 의문스러운 점이 너무도 많았다. 75도 경사진 곳에서 15미터나 굴러 떨어졌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깨끗한 시신의 상태, 유일한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의 매번 엇갈리는 진술, 배낭 속에 들어 있던 보온병의 유리가 전혀 깨지지 않은 점 등 숱한 의문을 해소하지 못해 대표적인 의문사로 남아 있었다.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에서는 이 사건의 전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담당 조사관 고상만이 지금까지 알려진 장준하 의문사 사건의 모든 것을 국민에게 낱낱이 밝히고,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과 여전히 오해에 가려져 있는 부분들을 하나하나 짚어줌으로써 이 사건의 재조사가 시급함을 역설한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부분은 물론 최초로 공개하는 자료들, 유일한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을 비롯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법정 스님, 9년 3개월이나 박정희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등 당대 주요 인물들과 나눈 상세한 대화가 실려 있어 이 사건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