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시절』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이 더는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음을 깨닫는 일인지도 모른다. 러시아 문학의 거장 레프 톨스토이가 스물여섯에 써낸 『소년 시절』은 바로 그 쓸쓸한 깨달음의 순간을 들여다본 작품이다. 『유년 시절』 『청년 시절』과 함께 자전 3부작을 이루는 이 소설은, 데뷔작으로 단숨에 문단의 주목을 받은 톨스토이가 같은 화자 니콜렌카 이르테니예프의 삶을 한 걸음 더 끌고 나아간 두 번째 매듭이다.
어머니를 여읜 소년이 정든 영지를 떠나 모스크바로 향하는 마차 여행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할머니의 죽음으로 끝나는 열서너 살의 짧은 한 시기, 그 사이에 소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지각변동을 작품은 촘촘히 좇는다. 앞 권 『유년 시절』이 다시 오지 않을 낙원을 향한 굽이치는 그리움이었다면, 『소년 시절』은 그 낙원에서 쫓겨난 뒤의 메마름이다. 거울 앞에서 못난 제 얼굴을 곱씹는 자의식, 무엇에서나 자기보다 나은 형에게 느끼는 열등감, 깐깐한 가정교사 생제롬을 향한 까닭 모를 증오, 그리고 끝없는 자기 분석으로 빠져드는 외로운 사념—누구나 한 번은 통과했으되 좀처럼 입에 올리지 않는 그 마음의 풍경이 정직하게 펼쳐진다.
이 작품을 다른 성장소설과 가르는 가장 뚜렷한 표지는, 사춘기 소년의 머릿속에서 처음 싹트는 추상적 사유다. 니콜렌카는 영혼의 불멸과 자유의지를 골똘히 따지고, "세상은 나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아찔한 의심에까지 더듬어 간다. 진지하지만 미숙하고, 그래서 어딘가 미소를 자아내는 이 사변은, 형의 빙긋 웃는 눈길 한 번에 "죄다 허튼소리"로 무너지고 만다. 끝없는 자기 분석이 도리어 감정의 싱그러움을 갉아먹는다는 이 통찰은, 훗날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로 이어지는 톨스토이 문학의 평생에 걸친 화두가 된다.
그러나 작품은 메마른 사춘기의 끝에서 마침내 한 줄기 빛을 비춘다. 자기 안에만 갇혀 있던 소년은 하인들의 삶을 엿보며 처음으로 타인의 마음을 발견하고, 형의 친구 드미트리 네흘류도프와 첫 진지한 우정을 맺는다. 서로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약속하는 두 소년의 모습은 청년기의 문턱을 환히 밝힌다. 흥미롭게도 여기 처음 등장하는 네흘류도프는, 반세기 뒤 톨스토이 만년의 대작 『부활』에서 주인공으로 돌아온다. 한 소년의 사춘기를 끝맺는 이 우정이, 작가의 도덕적 탐구의 첫 씨앗이었던 셈이다.
화려한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없는 작품이다. 그 대신 이 소설은 한 인간이 '나'라는 외로운 의식과 처음 마주하는 그 떫고 어색한 시기를, 어른이 된 화자의 성찰적 거리와 그때 그 자리에서 들끓던 소년의 즉시성이라는 두 겹의 시선으로 그려 낸다. 톨스토이 자신은 만년에 이 3부작을 "사실과 허구의 어설픈 뒤섞임"이라 깎아내렸지만, 사춘기 내면을 이만큼 정직하게 들여다본 작품은 드물다. 바로 그 정직함이, 한 세기 반이 넘도록 이 작품을 살아남게 한 힘이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는 제 마음을 비추는 거울로, 그 시절을 지나온 어른에게는 잊고 있던 한 시절을 되찾는 통로로, 『소년 시절』은 오늘도 조용히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