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전부터 마음은 먼저 바다를 건넜다
2026년의 봄,
나는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울릉도라는 섬에서 시작될 전자책 출간 수업.
화면으로 먼저 만나고, 글로 가까워지고,
마침내 각자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해 갈 사람들을 향한 길이었다.
그날의 바다는 어두웠고,
배는 묵묵히 파도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난간에 기대어 한참을 바다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수업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지만
어쩌면 내 마음은 그날 비로소
이 여정의 깊이를 실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울릉도서관 전자책 출간 수업을 제안받았을 때, 기쁜 마음보다 먼저 조심스러운 질문들이 떠올랐다.
울릉도라는 지리적 특성상 수업은 온라인으로 시작되어야 했다. 온라인으로 만나 글을 쓰고, 이미지를 고르고, 표지를 만들고, 전자책 출간까지 함께 가야 하는 과정이었다.
‘화면 너머에서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을까.’
‘평일 저녁에 이어지는 수업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처음 글을 꺼내는 분들이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정말, 출간이라는 마지막 장면까지 닿을 수 있을까.’
수업을 시작하기 전, 나는 가장 먼저 바다가 아니라 화면 너머의 시간을 걱정했다. 평일 저녁의 두 시간은 쉽게 비워지는 시간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일을 마친 뒤의 시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일을 정리한 뒤에야 겨우 찾아오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하루 종일 미뤄 두었던 자신의 마음을 처음으로 들여다보게 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전자책을 만드는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삶을 글로 꺼내고, 그 글을 다시 읽고, 어쩌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표지 위에 올려 보는 일. 그것은 단순히 파일 하나를 완성하는 수업이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너무 어렵지 않게 시작되고, 중간에 멈추지 않으며, 끝내 세상에 닿을 수 있도록 곁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3월 둘째 주, 첫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늘 자료보다 먼저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했다.
오늘의 설명이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을지, 혹시 한 사람이라도 자신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화면을 끄지는 않을지, 원고를 쓰다가 막막해진 마음을 안고 있지는 않을지.
그런데 걱정은 매번 예상보다 빨리 사라졌다.
하루를 마친 뒤에도 화면 앞에 모여든 사람들의 눈빛에는 자기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낯선 도구를 배우는 순간에도, 문장을 고치고 제목을 고민하는 시간에도, 그들은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자기 삶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온라인이라는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누군가의 질문은 채팅창을 통해 먼저 닿았고, 짧은 답장과 응원은 화면을 가로질러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각자의 방에서 접속했지만, 우리는 조금씩 같은 문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되어 갔다.
그 봄, 나는 알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은 거창한 순간에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늦은 저녁, 피곤한 하루 끝에 ‘그래도 오늘은 내 이야기를 조금 써 볼까’ 하고 화면을
켜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작은 마음들이 모이면, 바다를 사이에 둔 거리도 언젠가는 한 권의 책으로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