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전, 한 정복자가 산이 남긴 경고를 손에 쥐고도 읽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갈라진 벽이 입을 열기 시작한다.
_ 천 년의 기억과 무너지는 신도시, 깨어나는 산 - 전 10권 동아시아 대서사, 그 두 번째 권
서기 926년. 발해를 무너뜨린 거란 장군 야율우지가 백두산 자락의 빈 마을 천지촌에 들어선다. 그곳에는 한 사신이 매일 천지의 물과 땅의 떨림을 적어 둔 벽의 기록이 남아 있다. 마지막 한 줄은 이렇게 끝난다. “산이 움직이고 있다. 조심하라.” 그러나 야율우지는 발해의 문자를 읽지 못한다. 이십 년 뒤 글자를 익혀 그 문장을 읽었을 때조차, 그는 끝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기록은 있었다. 읽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2058년 겨울. 백두산에서 돌아온 학자 강민호는 조카가 사는 평주 고원국제신도시에 작은 연구실을 연다. 같은 도시의 안전검사관 김도훈은 한 건물의 콘크리트가 설계 강도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데이터에서 읽어 낸다. 보고서를 올리자 돌아온 것은 좌천이었다. 태성토건의 한 사원 서지연은 육 년 동안 서랍에 숨겨 둔 USB를 마침내 가방으로 옮긴다. 태평양 건너에서는 화산학자 이혜진이 백두산 칼데라의 비대칭 융기가 가속되고 있음을 위성 데이터에서 확인한다. 거실 벽의 균열은 삼십팔 센티미터를 넘어, 다시 사십일 센티미터로 자란다. 서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균열 앞에서 입을 열기 시작한다.
「백두산, 천 년의 서사」 2권은 1권에서 뿌려진 세 개의 씨앗 - 가문의 기억, 무너지는 양심, 깨어나는 산 - 이 비로소 균열로 모습을 드러내는 권이다. 콘크리트의 금과 우정 위에 올라탄 카르텔의 거래와 천지 바닥의 비대칭 융기는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작가는 그것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음을 천천히 드러낸다. 균열은 벽에서 바닥으로, 바닥에서 기둥으로, 한 가정에서 한 도시로, 그리고 산의 깊은 곳으로 번져 간다. 벽의 균열과 인간의 균열, 그 둘은 어쩌면 같은 뿌리에서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라는 것은 균열만이 아니다. 천 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항아리가 마침내 열리고, 그 안에서 한 사신이 죽간에 남긴 경고가 천 년을 건너 후손의 손에 닿는다. 침묵하던 검사관은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홀로였던 양심은 둘이 되고 셋이 된다. 아는 사람이 한 명이면 혼자였지만, 다섯이면 하나의 움직임이 된다. 그리고 어느 봄날, 열한 살 아이가 거실 바닥에서 누구도 보지 못한 가느다란 금 하나를 발견한다. 천 년 전 사신이 벽에 첫 줄을 적었듯이, 아이는 그것을 공책에 적는다. 부실이 자라나는 속도와 양심이 자라나는 속도, 그 둘 중 어느 쪽이 더 빠를 것인가.
세계 신화에서 인간 마음의 원형을 길어 올려 온 작가 차재민이, 신화와 현실을 잇는 ‘뮈토피크션(Mythofiction)’으로 써 내려가는 전 10권의 대서사 「백두산, 천 년의 서사」. 그 두 번째 권에서, 천 년 전 읽히지 못한 경고는 비로소 현재의 목소리로 되살아나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읽지 못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