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청년 시절』
다 큰 어른인 척하지만 실은 무엇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는 열여섯 소년이 있다. 그는 깨끗이 다듬은 손톱과 흠잡을 데 없는 프랑스어, 매사에 시큰둥한 표정만 갖추면 세상 누구보다 윗길이라 믿는다. 이 우스꽝스럽고도 가여운 청년이 바로 니콜렌카 이르테니예프이며, 그를 빚어낸 사람은 스물대여섯의 젊은 톨스토이다.
『청년 시절』은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로 이어져 온 톨스토이 자전 3부작의 마지막 권이다. 어머니 품의 그리움을 그린 첫 권, 사춘기의 메마른 자의식을 좇은 둘째 권에 이어, 이 책은 대학에 갓 들어간 니콜렌카가 어른의 문턱에서 비틀거리는 한 해를 그린다. 그런데 이 마지막 권은 앞 두 권보다 한결 가차 없다. 회상하는 어른 화자의 눈이 더 날카로워져, 한때의 자신을 거의 해부하듯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떠받치는 것은 '콤 일 포(comme il faut)'라는 헛된 이상이다. 상류 청년이 갖춰야 할 세련됨의 총체를 뜻하는 이 말에, 니콜렌카는 제 인생의 황금 같은 시간을 죄다 갖다 바친다. 톨스토이의 칼끝이 매서운 것은, 그가 이 속물근성을 단순히 비웃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세련됨이 삶의 목적 자체를 집어삼키는 그 무서움까지 짚어 내기 때문이다. "나는 더없이 콤 일 포한 사람이었소"라는 말밖에 남길 게 없는 운명이 니콜렌카를 기다린다.
책의 호흡은 들뜬 도취와 즉각적인 추락의 끝없는 되풀이로 짜여 있다. 봄 햇살에, 고해의 맑음에, 달빛 어린 밤의 공상에 거듭 황홀해하다가도, 마부 앞에서 제 경건함을 뽐내려는 허영에 그 감동을 스스로 더럽힌다. 친구를 위해 제 누이까지 내주는 영웅적 자기희생을 공상하다가, 바로 다음 순간 그 누이와 결혼하면 더 좋겠다고 셈하기도 한다. 고귀한 충동과 비루한 허영이 한 호흡에 자리를 바꾸는 이 마음의 진자운동이야말로, 톨스토이가 평생 천착한 '영혼의 변증법'의 청년판이다.
이야기는 니콜렌카가 시험에 보기 좋게 낙제하는 데서 끝난다. 그러나 사흘을 눈물로 보낸 끝에, 그는 다시 '인생의 규칙'을 적던 공책을 펼친다. 우리는 그가 그 결심을 또 깨뜨리리라는 것을 안다. 마흔다섯 장 내내 그래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깨질 것을 알면서 다시 펜을 드는 그 행위 속에, 인간의 자기 완성에 대한 톨스토이의 끈질긴 믿음이 담겨 있다. 완성이란 도달하는 상태가 아니라 끝없이 다시 시작하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에 매여 정작 제 삶의 알맹이를 비워 버리는 허영, 다른 세계를 처음 마주하며 제가 딛고 선 자리가 흔들리는 경험은 어느 시대 청년의 것이기도 하다. 톨스토이는 자신을 조금도 미화하지 않음으로써, 도리어 모든 독자가 제 젊은 날의 부끄러움을 그 안에서 알아보게 만든다. 가장 정직한 자화상이 가장 보편적인 거울이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