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만 보이는 핑크 코끼리와 일타강사의 탄생
스마트폰을 열고 SNS 피드를 몇 번 쓱쓱 넘겨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세상이 곧 망할 것처럼 분노하고 있고, 바로 옆 피드의 어떤 사람은 인생이 너무나 아름답다며 샴페인 잔을 부딪치고 있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는데 도대체 누구의 세상이 진짜일까요? 정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약 2,500년 전, 그리스 아테네의 광장을 주름잡던 한 남자가 윙크를 던지며 이렇게 말했으니까요. “둘 다 맞습니다. 당신이 느끼는 세상이 당신에게는 진짜 진실이거든요!” 이 발칙하고 위험한 생각을 세상에 퍼뜨린 주인공이 바로 ‘소피스트의 왕’이자 최초의 스타 철학자,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입니다.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인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선언은 철학 역사상 가장 거대한 폭탄선언이었습니다.[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ertios), 『Lives and Opinions of Eminent Philosophers(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Harvard University Press, 1925]. 이 말은 쉽게 말해 ‘절대적인 정답 같은 건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감기 기운이 있는 다른 사람에게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바람은 따뜻한 걸까요, 차가운 걸까요? 프로타고라스의 답은 심플합니다. 둘 다 맞다는 것입니다. 바람의 진짜 온도를 측정하겠다며 우주의 절대 법칙을 찾아 헤매던 당시 철학자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친 유쾌한 반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유쾌해 보이는 철학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위험합니다. 만약 모든 사람의 의견이 다 진실이라면, 법은 왜 필요하고 재판은 왜 하겠습니까? 도둑이 “내 진실에 따르면 이 지갑은 내 것입니다”라고 우기면 처벌할 근거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플라톤(Plato)은 그의 저서에서 프로타고라스의 이런 상대주의적 주장을 맹렬하게 공격했습니다.[플라톤(Plato), 『Theaetetus(테아이테토스)』,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4]. 플라톤은 만약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면 돼지나 원숭이도 각자의 만물의 척도가 될 수 있냐며 비아냥댔지요. 정답이 없는 세상은 곧 혼란이자 파멸이라고 믿었던 플라톤에게 프로타고라스는 사회를 뒤흔드는 위험한 선동가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위험한 생각 덕분에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인 ‘민주주의’가 싹을 틔울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신의 목소리를 독점한 왕이나, 진리를 독점했다고 주장하는 소수의 귀족이 지배하던 시대에 프로타고라스는 “평범한 시민 누구나 정치적 덕성을 배울 수 있다”고 외쳤습니다.[플라톤(Plato), 『Protagoras(프로타고라스)』,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모두의 의견이 각자에게 진실이라면, 국가의 중대사는 결국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토론과 설득을 통해 결정해야 합니다. 즉, 절대적 진리가 사라진 자리에 ‘대화와 합의’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메커니즘이 들어선 것입니다. 그는 단순히 말장난을 가르친 궤변론자가 아니라, 시민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배달해 준 민주주의의 설계자였습니다.
게다가 프로타고라스는 철학을 방구석 연구실에서 광장으로 끄집어내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인류 최초의 ‘스타 강사’이기도 했습니다. 플라톤의 기록에 따르면 프로타고라스는 평생 철학을 가르쳐 번 돈이, 당대 최고의 조각가였던 페이디아스와 다른 조각가 네 명이 평생 번 돈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합니다.[플라톤(Plato), 『Meno(메논)』,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웬만한 대기업 회장 부럽지 않은 수입을 올렸던 셈입니다. 그는 수강료를 책정할 때도 매우 독창적이었는데, 수업이 끝난 후 학생이 배운 내용에 만족하지 못하면 신전에 가서 “내가 생각하기에 이 수업은 이 정도 가치였다”고 선서한 뒤 그만큼만 내게 했습니다. 내 만족도가 곧 가격의 척도라는, 뼛속까지 상대주의자다운 쿨한 영업 방식이었습니다.
물론 그의 인생이 늘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닙니다. 신에 대해 “알 길이 없다”는 거침없는 불가지론을 주장했다가 아테네 법정에서 신성모독 죄로 고발당해 책이 광장에서 불태워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ertios), 『Lives and Opinions of Eminent Philosophers(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Harvard University Press, 1925]. 하지만 그가 던진 질문은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확증 편향과 필터 버블에 갇혀 “내가 믿는 것만 진실”이라고 외치는 현대인들에게, 프로타고라스는 타인의 진실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을 건넵니다.
이 책은 궤변론자라는 억울한 누명을 쓴 프로타고라스의 명예를 회복하는 유쾌한 변론서이자 절대적인 정답 강박증에 걸린 현대 사회를 향한 통쾌한 처방전입니다. 완고한 소크라테스(Socrates)나 고집불통 플라톤의 시선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인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진짜 프로타고라스의 매력 속으로 함께 걸어가 보시지 않겠습니까? 문을 열고 광장으로 나가는 순간, 당신이 알던 진실이 기분 좋게 뒤집히기 시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