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전, 산의 경고를 적은 사신은 혼자였다. 그래서 아무도 듣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흩어져 경고하던 목소리들이 마침내 한자리에 모인다.
_ 위성과 죽간과 크랙 게이지가 같은 곳을 가리킬 때 - 전 10권 동아시아 대서사, 그 세 번째 권
서기 926년. 발해가 무너지고 사신 김덕문이 떠난 뒤, 백두산에는 산의 언어를 읽는 사람이 남지 않았다. 산은 20년 동안 물의 온도로, 새의 부재로, 나무의 죽음으로 경고했다. 그러나 경고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946년 가을, 산이 응답했다. 그것은 파괴였다. 기록한 사람은 떠났고, 읽는 사람은 없었다. 「백두산, 천 년의 서사」 3권은 그 천 년 전의 어긋남을 다시 펼쳐 놓는 것으로 시작한다. 경고가 무시된 것이 아니라, 경고를 들을 사람이 없었다는 것. 그것이 천 년 전의 비극이었다.
1권이 깨어남이었고 2권이 균열의 첫마디였다면, 3권은 흩어져 있던 목소리들이 서로를 향해 걸어가는 권이다.
캘리포니아의 화산학자 이혜진은 위성 데이터에서 동쪽으로 치우쳐 가속하는 산의 융기를 읽는다. 도쿄의 타나카 히로시는 25년의 경험으로 "이 곡선은 잠든 화산의 곡선이 아니다"라고 직감한다. 평주의 안전검사관 김도훈은 12만 원짜리 크랙 게이지를 들고 매주 화요일 지하 기둥 앞에 무릎을 꿇는다. 태성토건의 서지연은 20년간의 배합 설계서에서 천천히 깊어진 부실의 패턴을 발견한다. 발해사 학자 강민호는 천 년의 기록을 한 벽에 모은다. 옌볜의 가구 장인 김민철은 산에서 처음 맡는 유황 냄새에 대패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백두산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삼지연에서, 행정 간부 박종철은 발바닥으로 산의 떨림을 느끼면서도 말하지 못한다.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다른 도구로, 같은 산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카산드라다. 트로이가 무너질 것을 알았지만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은 예언자. 각자 경고했지만 세상은 듣지 않았다.
김도훈은 건드리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고, 서지연은 알면서도 말할 수 없었으며, 이혜진의 데이터에는 시기상조라는 답이 돌아왔다. 흩어진 카산드라는 무력하다. 혼자 말하면 미친 사람이고, 둘이 말하면 불만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강민호의 좁은 연구실에 일곱 사람이 각자의 기록을 들고 모이는 순간, 흩어져 있던 경고가 하나의 목소리가 되기 시작한다.
천 년의 죽간과 오늘의 인터페로그램이, 산의 데이터와 건물의 균열이, 위성과 코와 크랙 게이지가 같은 벽 위에 나란히 놓인다. 카산드라들의 결합이다.
마침내 USGS가 경보를 발령한다. 발표문은 다섯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네 개의 나라로 전송된다.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세상이 듣기 시작한다. 그러나 산에서 가장 가까운 한 곳, 삼지연의 사람들에게는 그 경고가 닿지 않는다. 채널이 없기 때문이다. 천 년 전에는 경고할 사람이 없어서 사람들이 죽었고, 천 년 후에는 경고하는 사람이 있어도 경고를 전할 길이 없는 곳이 남는다. 가장 가까운 곳이 가장 먼 곳이 되는 역설. 부재의 형태만 바뀐 것이다.
세계 신화에서 인간 마음의 원형을 길어 올려 온 작가 차재민이, 신화와 현실을 잇는 '뮈토피크션(Mythofiction)'으로 써 내려가는 전 10권의 대서사 「백두산, 천 년의 서사」.
그 세 번째 권에서 카산드라의 진짜 비극이 드러난다. 예언이 틀린 것이 아니라, 예언이 맞았는데 아무도 듣지 않는 것. 그렇다면 멸망한 뒤에 옳았다고 인정받는 것은 의미가 없다. 멸망하기 전에 믿게 해야 한다. 산은 경고만 한다. 듣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이 권은 우리에게 묻는다. 목소리들이 모였다. 이제 당신은 들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