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헤리티지 시리즈
K-뷰티, K-팝, K-무비. 오늘날 전 세계가 'K'라는 글자 앞에 열광한다. 그런데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이 모든 것은 대체 어디서 왔는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K-뷰티의 뿌리를 따라가면 1933년 경성 화신백화점 2층의 작은 미용실이 나온다. K-패션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전쟁의 폐허 위에서 줄자를 든 한 여성이 서 있다. K-팝의 출발점에는 현해탄을 건너다 사라진 소프라노의 레코드가 있고, K-무비의 첫 장면에는 눈물바다가 된 단성사의 어둠 속에서 돌아가던 필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바탕에는 경성 정동 29번지, 이방인의 커피잔이 놓여 있다.
『K-헤리티지 시리즈』는 근현대 한국의 선구자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는 다섯 권의 기록이다. 오엽주의 가위, 노라 노의 줄자, 윤심덕의 레코드, 나운규의 필름, 손탁의 커피잔. 이 다섯 개의 물건은 각각 하나의 시대를 열었고, 하나의 산업을 일궜으며, 하나의 문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문화들이 100년을 건너 오늘의 'K'가 됐다.
이 시리즈는 역사책이 아니다. 연표를 외우거나 사건을 분류하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니다. 낯선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들이 세상과 부딪히며 만들어낸 것들의 이야기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용기와 선택 위에 서 있는지를.
제1권. K-뷰티의 탄생 : 조선의 모던 걸과 오엽주의 가위
1933년 봄, 경성 종로 화신백화점 2층에 작은 문이 하나 열렸다. 조선 최초의 미용실이었다. 문을 연 사람은 오엽주.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스물다섯 살의 여성이었다.
당시 조선에서 여성이 남의 머리를 만지는 일은 기생이나 하는 천한 것으로 여겨졌다. 단발은 불효였고, 퍼머넌트는 허영의 극치였다. 언론이 쏘아붙이고 유교적 시선이 날을 세우는 그 한복판에서 오엽주는 가위를 들었다. 쌀 한 가마니 값을 치르고 계단을 올라오는 여성들이 있었다. 그녀들이 거울 앞에 앉아 원하는 것은 단순히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선택하는 경험이었다.
이 책은 오엽주라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조선 사회에 어떻게 균열을 내고 스며들었는지를 추적하는 기록이다. 박가분에서 구리무까지, 미용실에서 사교장까지, 경성 여성들의 화장대 위에 놓인 물건들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것을 바꾸고 있었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그 작은 가위질 하나가 오늘날 전 세계를 사로잡은 K-뷰티의 뿌리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묻는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시대와 싸워왔다. 오엽주는 그 싸움의 맨 앞줄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