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헤리티지 시리즈
K-뷰티, K-팝, K-무비. 오늘날 전 세계가 'K'라는 글자 앞에 열광한다. 그런데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이 모든 것은 대체 어디서 왔는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K-뷰티의 뿌리를 따라가면 1933년 경성 화신백화점 2층의 작은 미용실이 나온다. K-패션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전쟁의 폐허 위에서 줄자를 든 한 여성이 서 있다. K-팝의 출발점에는 현해탄을 건너다 사라진 소프라노의 레코드가 있고, K-무비의 첫 장면에는 눈물바다가 된 단성사의 어둠 속에서 돌아가던 필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바탕에는 경성 정동 29번지, 이방인의 커피잔이 놓여 있다.
『K-헤리티지』 시리즈는 근현대 한국의 선구자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는 다섯 권의 기록이다. 오엽주의 가위, 노라 노의 줄자, 윤심덕의 레코드, 나운규의 필름, 손탁의 커피잔. 이 다섯 개의 물건은 각각 하나의 시대를 열었고, 하나의 산업을 일궜으며, 하나의 문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문화들이 100년을 건너 오늘의 'K'가 됐다.
이 시리즈는 역사책이 아니다. 연표를 외우거나 사건을 분류하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니다. 낯선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들이 세상과 부딪히며 만들어낸 것들의 이야기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용기와 선택 위에 서 있는지를.
제2권. K-패션의 탄생 : 조선의 신여성과 노라 노의 줄자
1956년, 서울 반도호텔 다이너스티룸. 런웨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한 여성이 무대를 만들었다. 노라 노. 미국과 파리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돌아온 그녀는 100퍼센트 국산 기술과 원단으로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열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였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선언하는 언어다. 치마저고리를 벗고 양장을 입은 신여성들은 그 언어로 시대에 맞섰다. 학교 교복이 바뀌고, 맞춤복 가게가 명동 골목을 채우고, 윤복희의 미니스커트가 온 나라를 뒤흔들던 그 시절, 한국의 패션은 유행이 아니라 저항이었다.
이 책은 노라 노의 줄자 하나에서 시작해 오늘날 파리 패션 위크까지 이어지는 K-패션의 계보를 추적한다. 맞춤복의 전성시대에서 기성복의 등장까지, 봉제공장의 땀에서 디자이너 브랜드의 영광까지, 한국 패션이 걸어온 길은 생각보다 훨씬 치열하고 아름다웠다. 노라 노가 줄자로 재고 가위로 잘라낸 것은 천 조각만이 아니었다. 시대의 편견도 함께 잘려나갔다.
옷은 시대를 입는다. 그리고 가끔은 시대를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