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헤리티지 시리즈
K-뷰티, K-팝, K-무비. 오늘날 전 세계가 'K'라는 글자 앞에 열광한다. 그런데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이 모든 것은 대체 어디서 왔는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K-뷰티의 뿌리를 따라가면 1933년 경성 화신백화점 2층의 작은 미용실이 나온다. K-패션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전쟁의 폐허 위에서 줄자를 든 한 여성이 서 있다. K-팝의 출발점에는 현해탄을 건너다 사라진 소프라노의 레코드가 있고, K-무비의 첫 장면에는 눈물바다가 된 단성사의 어둠 속에서 돌아가던 필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바탕에는 경성 정동 29번지, 이방인의 커피잔이 놓여 있다.
『K-헤리티지』 시리즈는 근현대 한국의 선구자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는 다섯 권의 기록이다. 오엽주의 가위, 노라 노의 줄자, 윤심덕의 레코드, 나운규의 필름, 손탁의 커피잔. 이 다섯 개의 물건은 각각 하나의 시대를 열었고, 하나의 산업을 일궜으며, 하나의 문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문화들이 100년을 건너 오늘의 'K'가 됐다.
이 시리즈는 역사책이 아니다. 연표를 외우거나 사건을 분류하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니다. 낯선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들이 세상과 부딪히며 만들어낸 것들의 이야기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용기와 선택 위에 서 있는지를.
제3권. K-팝의 탄생 : 조선의 소프라노와 윤심덕의 레코드
1926년 8월, 관부 연락선이 현해탄을 건너다 멈췄다. 배 위에 있어야 할 두 사람이 사라졌다. 그중 한 명이 윤심덕이었다. 조선 최초의 관비 유학생, 경성 공회당을 가득 채운 소프라노, 그리고 조선 최초의 대중가요 레코드를 취입한 여성.
그녀가 오사카 녹음실에서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가 〈사의 찬미〉였다. 죽음을 찬양한다는 제목의 그 노래는 10만 장이 팔렸다. 축음기 앞에 모여 앉은 조선인들은 울었다. 무엇 때문에 울었는지 정확히 말하기 어려웠지만, 분명히 울었다. 그것이 대중음악의 힘이었다.
이 책은 윤심덕의 레코드 한 장에서 출발해 오늘날 빌보드를 점령한 K-팝까지의 긴 여정을 따라간다. 유성기판을 타고 흐르던 조선인의 희로애락이 트로트가 되고, 미8군 무대를 거쳐 아이돌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마침내 전 세계 팬덤을 만들어낸 과정을 촘촘히 살핀다. 완벽한 퍼포먼스를 향한 집착, 감정을 정확히 전달하려는 열망. 윤심덕이 가위를 들던 그 녹음실에서 이미 K-팝의 DNA는 시작되고 있었다.
노래는 시대의 슬픔을 먹고 자란다. 그리고 가끔은 시대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