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헤리티지 시리즈
K-뷰티, K-팝, K-무비. 오늘날 전 세계가 'K'라는 글자 앞에 열광한다. 그런데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이 모든 것은 대체 어디서 왔는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K-뷰티의 뿌리를 따라가면 1933년 경성 화신백화점 2층의 작은 미용실이 나온다. K-패션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전쟁의 폐허 위에서 줄자를 든 한 여성이 서 있다. K-팝의 출발점에는 현해탄을 건너다 사라진 소프라노의 레코드가 있고, K-무비의 첫 장면에는 눈물바다가 된 단성사의 어둠 속에서 돌아가던 필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바탕에는 경성 정동 29번지, 이방인의 커피잔이 놓여 있다.
『K-헤리티지』 시리즈는 근현대 한국의 선구자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는 다섯 권의 기록이다. 오엽주의 가위, 노라 노의 줄자, 윤심덕의 레코드, 나운규의 필름, 손탁의 커피잔. 이 다섯 개의 물건은 각각 하나의 시대를 열었고, 하나의 산업을 일궜으며, 하나의 문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문화들이 100년을 건너 오늘의 'K'가 됐다.
이 시리즈는 역사책이 아니다. 연표를 외우거나 사건을 분류하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니다. 낯선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들이 세상과 부딪히며 만들어낸 것들의 이야기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용기와 선택 위에 서 있는지를.
제4권. K-무비의 탄생 : 조선의 무성 영화와 나운규의 필름
1926년 10월, 단성사가 눈물바다가 됐다. 스크린 위에서는 총독부 경찰에게 쫓기는 청년이 허허벌판을 달리고 있었다. 영화 〈아리랑〉이었다. 만든 사람은 나운규. 배우이자 감독이었던 그는 필름 위에 조선인의 울분을 새겼다. 관객들은 박수를 치다가 울었고, 울다가 또 박수를 쳤다.
말이 없어도 통했다. 변사의 목소리가 스크린의 침묵을 채웠고, 조선인들은 움직이는 그림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했다. 영화는 그렇게 민족의 언어가 됐다. 일제의 검열이 날카로워질수록 필름 위의 저항은 더 교묘하고 더 깊어졌다.
이 책은 나운규의 필름 한 컷에서 시작해 봉준호의 오스카, 오징어 게임의 넷플릭스까지 이어지는 K-무비의 계보를 추적한다. 열악한 장비와 검열의 시대를 버텨낸 1세대 영화인들, 코리안 뉴웨이브의 예술적 도전, 그리고 전 세계가 한국적 서사에 열광하게 된 이유를 차례로 살핀다. 나운규가 카메라를 들던 그 손끝에서 이미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영화는 멈추지 않는 꿈의 기록이다. 그 꿈은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