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헤리티지 시리즈
K-뷰티, K-팝, K-무비. 오늘날 전 세계가 'K'라는 글자 앞에 열광한다. 그런데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이 모든 것은 대체 어디서 왔는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K-뷰티의 뿌리를 따라가면 1933년 경성 화신백화점 2층의 작은 미용실이 나온다. K-패션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전쟁의 폐허 위에서 줄자를 든 한 여성이 서 있다. K-팝의 출발점에는 현해탄을 건너다 사라진 소프라노의 레코드가 있고, K-무비의 첫 장면에는 눈물바다가 된 단성사의 어둠 속에서 돌아가던 필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바탕에는 경성 정동 29번지, 이방인의 커피잔이 놓여 있다.
『K-헤리티지』 시리즈는 근현대 한국의 선구자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는 다섯 권의 기록이다. 오엽주의 가위, 노라 노의 줄자, 윤심덕의 레코드, 나운규의 필름, 손탁의 커피잔. 이 다섯 개의 물건은 각각 하나의 시대를 열었고, 하나의 산업을 일궜으며, 하나의 문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문화들이 100년을 건너 오늘의 'K'가 됐다.
이 시리즈는 역사책이 아니다. 연표를 외우거나 사건을 분류하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니다. 낯선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들이 세상과 부딪히며 만들어낸 것들의 이야기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용기와 선택 위에 서 있는지를.
제5권. K-푸드의 탄생 : 조선의 황제와 손탁의 커피잔
1900년대 초, 경성 정동 29번지에 낯선 건물이 하나 들어섰다. 손탁 호텔이었다. 문을 연 사람은 앙투아네트 손탁. 고종 황제의 신임을 얻은 독일계 프랑스 여성이었다. 포크와 나이프, 커피와 서양 요리. 그녀의 식탁은 조선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였다.
고종은 커피를 사랑했다. 덕수궁 정관헌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제국의 기울어가는 무게를 견뎠다. 그 커피잔 하나가 이후 경성 다방 문화로 번지고, 이상과 구보 같은 모더니스트들의 아지트가 됐고, 설탕 듬뿍 넣은 믹스커피를 거쳐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카페 문화로 진화했다.
이 책은 손탁이라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조선의 식탁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서양 음식이 조선에 충돌하고 스며들고 변형되는 과정, 아지노모토와 빵과 라면이 한국인의 미각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그리고 그 혼합과 수용의 역사 끝에 K-푸드라는 독자적인 문화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추적한다. 외국인의 커피잔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결국 가장 한국적인 맛의 이야기로 귀결된다는 사실이, 이 시리즈의 마지막 권을 손탁으로 마무리하는 이유다.
식탁 위의 근대는 여전히 진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