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아니라 물음에서 시작하는 경제학사
수요곡선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1870년대에 세 나라의 경제학자들이 각자 어떤 막다른 곳에 부딪혀 있었기 때문에 나왔다. 국민소득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1930년대의 대공황 앞에서 기존의 언어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새로 만든 단위다.
그런데 교과서는 그 사정을 말하지 않는다. 첫 장부터 희소성이 나오고 기회비용이 나오고 수요곡선이 나온다. 개념마다 정의는 분명하고 예시도 적절하다. 그렇게 800쪽이 채워진다. 다만 이 도구들이 **어떤 물음에 답하려고 만들어졌는지**는 끝내 나오지 않는다.
저자는 이것을 '탈맥락'이라 부른다. 이론을 그것이 태어난 시대에서 잘라내 진열장에 놓는 일이다. 진열장의 도구들은 잘 닦여 있고 이름표도 붙어 있지만,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는 알 수 없다. 물음을 모르면 답은 외울 수밖에 없고, 외운 것은 시험이 끝나면 사라진다.
이 책은 순서를 바꾼다. 어떤 시대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를 보고, 그 문제에 경제학이 어떻게 답했는지를 보고, 그 답이 어떻게 힘을 얻었다가 어떻게 힘을 잃었는지를 따라간다. 중상주의는 원격지 무역의 시대가 불러냈고, 스미스는 공장이 생기던 시대가, 맬서스와 리카도는 산업혁명이, 마르크스는 혁명의 좌절이, 케인스는 대공황이 불러냈다.
이 순서로 읽으면 이론은 진열장의 도구가 아니라 **누군가의 대답**이 된다. 대답에는 언제나 그것을 하게 만든 사정이 있다.
책은 각 이론을 손전등에 비유한다. 손전등은 무언가를 밝히는 대신 다른 곳을 어둠에 남긴다. 어떤 손전등도 방 전체를 비추지 못한다. 그런데 하나의 손전등을 든 사람은 자기가 비추는 곳이 방의 전부라고 믿기 쉽다. 여러 개의 손전등이 있었다는 것, 각각이 무엇을 밝히려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 앞의 어둠에는 어떤 손전등이 맞는지 — 이것이 이 책이 하려는 일이다.
대구대학교에서 20년 넘게 경제학사와 경제학원론을 강의해온 저자가, 매년 다른 학생에게서 같은 말을 들으며 얻은 결론에서 출발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