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집사의 딸― 이야기를 파는 여자
운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나간 여자 이야기
토머스 하디 장편소설 | 원제 『에설버타의 손』(The Hand of Ethelberta, 1876)
런던 사교계가 열광하는 젊은 여류 시인이 있다. 시집 한 권으로 이름을 얻고, 응접실마다 그녀의 다음 작품을 이야기한다. 다만 아무도 모른다. 그 여자의 아버지가 바로 그 집 식탁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집사라는 것을.
에설버타는 열 남매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났다. 목수와 하녀가 된 동생들을 먹여 살리려고 그녀가 택한 길은 이야기를 파는 일이었다. 무대에 앉아 지어낸 모험담을 제가 겪은 일처럼 들려주고 삯을 받는다. 그러나 그녀가 파는 가장 큰 허구는 무대 위가 아니라 제 삶에 있다. 어머니는 셋집 주인 행세를 하고, 언니는 요리사로, 남동생은 단추 달린 제복을 입은 사환으로 그녀를 시중든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가 초대받은 만찬에서 아버지가 그녀의 의자 뒤에 선다.
세 남자가 청혼해 온다. 화가와 자산가와, 예순이 넘은 자작. 원제의 '손'은 청혼을 받아들이는 손, 곧 혼인 승낙을 뜻하는 옛 표현이다. 하디는 이 소설에서 그 손에 값이 매겨지는 과정을 끝까지 지켜본다. 값을 매기는 사람이 다름 아닌 그녀 자신이라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오늘의 독자에게 더 서늘하게 읽힌다.
『테스』와 『무명의 주드』의 작가가 1876년에 내놓은 이 작품에서, 하디는 스스로 "까다로운 일"을 떠맡았다고 적었다. 하인이 주인보다 중요한 극을 쓰겠다는 것, 응접실을 하인방 쪽 시선으로 그리겠다는 것이었다. 지하 계단과 위층 만찬 사이를 오르내리는 이 소설의 구조는, 백오십 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낯익다.
백오십 년의 거리를 좁히는 250개의 각주. 이 소설의 웃음과 야유는 대부분 당대의 상식 위에 놓여 있다. 하인 사회의 위계, 기니와 파운드의 미묘한 차이, 명함에 적힌 주소 한 줄이 감추는 것, 문장(紋章)을 돈으로 사들이던 관행, 그리고 인물들이 태연히 주고받는 성서와 셰익스피어의 구절들. 이런 대목을 그냥 지나치면 하디가 문장 아래 숨겨 둔 농담의 절반이 사라진다. 서문과 47개 장과 후일담 전체에 걸쳐, 이 시대를 살지 않은 독자가 놓칠 수밖에 없는 자리마다 짧은 주석을 붙였다. 등장인물의 말투와 호칭도 신분에 따라 층위를 나누어 옮겨, 누가 누구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문장에서 그대로 드러나도록 했다.
요약
나귀는 에설버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저 지겨운 언덕들을 넘어 당신을 무사히 데려다주었는데, 왜 나를 당신 것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녀를 지금의 그녀로 만든 그 자존심과 겨루려는 마음은, 그 자리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인 저가 이미 나귀에게 쏟아진 그 조롱을 제 어깨에 떠맡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짐승이 젊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면 그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나이와, 시골 솜씨로 만든 볼품없는 마구와, 고된 종살이에 찌든 그 궁색하고 서글픈 낯빛은 견디기에 너무했다.
"여기 소풍 오는 사람이 많으니," 그녀가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어디 걷고 돌아올 때까지 저 짐승을 두고 갔는지도 모르지요."
"그렇겠군요." 진실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한 채 마운트클리어 경이 말했다. 이 미천한 나귀는 여느 때처럼 고개를 떨구었고, 에설버타로서는 그가 저를 업신여긴다고 상상하는 데 별다른 공상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의 마음은 제 내력과 출신으로, 그리고 아버지에게로 날아갔다. 어쩌면 그 순간 지하 식기실에서 은식기 닦는 가루를 손수 만들고 계실 아버지에게로. 그리고 나귀를 부끄러워하다니 이 무슨 앞뒤 안 맞는 짓인가 하는 신음과 함께 그녀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하느님, 나는 대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