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가 한 줄로 요약한 역사, 렌즈를 바꾸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이긴 쪽이 붓을 쥐고, 진 쪽의 이야기는 지워지거나 왜곡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진 한 줄짜리 요약이다. 패자는 어리석었고, 망한 나라의 군주는 무능했다고.
그런데 정말 그럴까.
관도대전에서 원소는 병력도, 보급도, 명분도 앞섰다. 어떤 지표로 봐도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런데 졌다. 교과서는 조조가 잘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심리학의 렌즈를 들이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원소의 머릿속에서 나르시시즘과 확증 편향이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패배는 전장이 아니라 그의 뇌에서 시작되었다.
같은 사건이라도 바라보는 렌즈를 바꾸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영웅담의 이면에 숨어 있던 구조적 실패가 드러나고, 무능하다고 낙인찍힌 인물 뒤에서 승자가 조작한 서사가 벗겨진다. 교과서가 한 줄로 정리한 사건 속에 경영학, 심리학, 경제학, 조직행동론이 설명하는 보편적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었다.
이 책은 그 메커니즘을 해부한다.
제갈량은 촉한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곤장 20대를 때리는 사소한 형벌까지 직접 결재했다. 그런데 그 헌신이 조직의 자생력을 거세했다. 제갈량이 죽자 촉한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은 조직이 되어 있었다. 조직행동론은 이것을 마이크로매니지먼트의 비극이라 부른다.
연산군은 500년 동안 희대의 색마로 불려왔다. 그런데 기록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면 이상한 점이 보인다. 만 명의 여인과 매일 밤을 보냈다는 남자의 자녀가 고작 7명이고, 9명의 후궁을 거느린 성군 성종의 자녀는 37명이다. 숫자가 서사와 맞지 않는다. 그 서사를 쓴 것은 연산군을 쫓아낸 쿠데타 세력이었다.
대영제국은 신사의 나라로 기억된다. 하지만 장부를 펼치면 전혀 다른 얼굴이 나타난다. 여왕이 해적에게 투자하고 배당금을 챙겼으며, 마약을 단속한 나라에 군함을 보내 배상금을 뜯어냈다. 산업혁명의 연료는 중국인의 중독과 인도인의 빈곤이었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양아치의 민낯이다.
광종의 노비안검법은 대차대조표 위의 특별세무조사로 읽혔고, 테르모필레의 300명은 란체스터 법칙이 만들어낸 냉정한 계산의 산물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천 년 제국은 인재를 굶기고 용병에게 심장을 맡긴 순간부터 이미 끝나 있었으며, 미드웨이에서 일본 제국의 천재 제독은 자기가 예견한 파멸을 막으려다 오히려 파멸을 앞당기는 수를 두었다.
기원전 480년 테르모필레의 협곡에서 1942년 미드웨이의 바다까지, 고려 광종의 왕궁에서 르네상스 바티칸의 연회장까지. 2,500년의 시간을 가로지르며 반복되는 하나의 질문을 따라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정말 그 모습이 맞는가.
현대 학문의 메스로 역사의 이면을 절개한 35편의 기록. 각 편은 독립된 칼럼으로, 어느 편부터 펼쳐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