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에 탐사선이 멈춰 섰다.
108일 뒤, 드릴이 멈추고 천 년 동안 갇혀 있던 것이 올라왔다.
_ 돌아온 사람들 - 전 10권 동아시아 대서사, 그 아홉 번째 권
「백두산, 천 년의 서사」 9권은 분화 후 656일에서 1,001일까지, 떠났던 것들이 돌아오는 열한 달을 따라간다. 배가 돌아오고, 사람이 돌아오고, 기록이 돌아가고, 말을 잃었던 아이가 사람에게로 돌아온다. 어느 것도 요란하게 돌아오지 않는다. 드릴이 하루에 20미터씩 내려가는 속도로, 연필이 1년에 0.5센티미터씩 닳는 속도로 돌아온다.
먼저 배가 돌아온다. 3,500톤의 탐사선 두라호가 양양 앞바다에 멈춘 좌표는, 전날 부두에서 예순다섯 살 어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이었다. 48년 동안 코로 맡아 온 것이 위도와 경도 두 개의 숫자가 된 것이다. 드릴은 108일 동안 멈추지 않는다. 퇴적층 80미터, 예상의 두 배로 단단했던 암반 151미터. 10월 25일 오전 7시 23분, 해저면 아래 231미터에서 드릴이 멈춘다. 메탄 79.1퍼센트. 상업적 규모. 소식을 받은 화산학자 이혜진이 단양의 노학자에게 전화를 걸어 말한다. 적으세요. 일흔네 살 강민호가 왼손으로 볼펜을 잡고 50년 만에 답을 적는다. 기름 같은 것은 천연가스였다. 그날 아침 속초의 어부는 양쪽 장화를 다 신고 바다로 나간다. 기자가 묻자 이렇게 답한다. 냄새가 났으니까 맡은 것이다.
사람도 돌아온다. 이혜진이 남편과 딸을 데리고 한국에 온다. 이번은 명절도 학회도 아니다. 분화가 만들어 준 사람들을 만나러 오는 것이다. 뒷마당에서 딴 레몬 세 개가 9,000킬로미터를 건너 단양의 보리차 잔으로 들어간다. 50년 동안 보리차만 끓인 정혜원이 처음으로 레몬차를 배운다. 열세 살 미아는 화산을 겪은 열 살 아이를 만나러 평주로 간다. 두 아이는 서로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한 채 동화책을 읽는다. 한국어로 읽어 줬다. 한 단어도 이해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 저녁 미아는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냄새가 아니라 눈을 봤기 때문이다.
기록은 반대 방향으로 떠난다. 파킨슨이 진행되며 약효가 두 시간에서 한 시간 45분으로 줄어들자, 강민호는 50년의 수첩 열세 권을 이혜진에게 보내기로 한다. 정혜원이 밤새 한지를 끼워 순서대로 포장한다. 종이가 종이를 보호하는 것이다. 보내기 전에 마지막 줄을 적는다. 멈추지 마. 그리고 같은 날, 열여섯 살 조카손녀 이은서에게 빈 수첩을 건넨다. 열세 권이 태평양을 건너는 날 열네 번째 권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은서가 첫 줄을 적는다. 멈추지 않겠다.
말을 잃었던 아이도 돌아온다. 스물세 살 이서진은 상담사 인증을 받고 첫 독립 상담을 시작한다. 여덟 살 준호는 아홉 주 동안 검은색 크레파스만 쥐고 있다가 다섯 가지 색으로 삼촌을 그린다. 국경 너머 옌지에서는 영하 32도의 겨울이 온다. 폐 기능이 58퍼센트인 쉰두 살 김응수의 기침이 여름의 한 번에서 아홉 번으로 늘어난다. 그 이불 속에서 두 돌 지난 나루가 말한다. 할아부지 따뜻해. 줄어드는 것과 자라는 것이 같은 이불 속에 있다.
아테네와 제네바와 워싱턴에서 따로 걷던 길들이 같은 곳을 향한다. WHO 회의실에서 프로이트, 융, 캠벨, 프랭클에 이은 다섯 번째 세대가 발표되고, 그 마지막 장에 어부의 아버지가 남긴 한 문장이 올라간다. 바다가 보내는 것은 다 받아야 한다. 어부의 말이 학자의 말 옆에 나란히 놓이는 것이다.
세계 신화에서 인간 마음의 원형을 길어 올려 온 작가 차재민이, 신화와 현실을 잇는 '뮈토피크션(Mythofiction)'으로 써 내려가는 전 10권의 대서사 「백두산, 천 년의 서사」. 그 아홉 번째 권은 파괴에서 시작한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