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고사(檀奇古史)를 둘러싼 논쟁은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가장 민감하면서도 가장 오래 지속된 쟁점 가운데 하나이다. 이 논쟁은 표면적으로는 하나의 문헌이 과연 진서인가 위서인가를 가리는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단기고사 논쟁은 결코 한 권의 책을 둘러싼 협소한 문헌 판정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 고대사를 어떻게 인식해 왔는가, 한국 역사학은 무엇을 사료로 인정하고 무엇을 배제해 왔는가, 신화와 역사의 경계를 어떤 기준으로 설정해 왔는가, 나아가 학문과 정체성과 공공성이 어떠한 긴장 관계 속에서 충돌하고 교섭해 왔는가를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거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단기고사 논쟁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단기고사는 대체로 두 가지 상반된 태도 속에서 다루어져 왔다. 하나는 이를 민족의 잃어버린 원형 기억으로 간주하여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였고, 다른 하나는 근대의 조작된 위서로 단정하여 학문적 검토의 장 바깥으로 밀어내는 태도였다. 이 두 태도는 서로 격렬하게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곧 단기고사를 분석과 설명의 대상으로 다루기보다, 먼저 믿음 혹은 불신의 대상으로 위치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는 단기고사를 보호해야 할 상징으로 만들고, 후자는 제거해야 할 오류로 만든다. 그러나 역사학의 본령은 상징을 숭배하거나 오류를 추방하는 데 있지 않다. 역사학의 본령은 문제적인 텍스트를 문제적인 그대로 붙들고, 그 텍스트가 어떤 전승 구조를 지니며 어떤 시대적 기능을 수행했고 어떤 인식론적 난점을 드러내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책에서 단기고사를 옹호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았다. 반대로 단기고사를 부정하기 위해서도 쓰지 않았다. 이 책의 목적은 단기고사를 둘러싼 위서논쟁 그 자체를 하나의 사학사적 사건으로 재구성하고, 그 논쟁을 통해 한국 고대사 인식의 구조적 한계와 역사학의 문명사적 전환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의 진정한 연구 대상은 단기고사라는 텍스트 하나가 아니라, 단기고사를 둘러싸고 형성된 지식의 구조, 권위의 질서, 정체성의 감정, 공공역사의 긴장, 그리고 AI·디지털 인문학 시대의 새로운 연구 가능성 전체이다.
기존 연구에서 단기고사 논쟁은 대체로 네 가지 방식으로 다루어졌다. 첫째, 문체와 연대를 중심으로 한 문헌비평적 위서론이 있었다. 둘째, 민족주의 사관의 산물이라는 정치적 목적론이 있었다. 셋째, 정사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역사적 실재를 부정하는 정사 중심주의가 있었다. 넷째, 그 반작용으로서 단기고사를 지나치게 절대화하고 성역화하는 재야적 혹은 대중적 대응이 있었다. 이 네 가지 접근은 모두 일정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분명한 한계를 안고 있다. 문헌비평은 종종 고대 텍스트의 다층적 형성 구조를 단일 저작 모델로 환원했고, 정치적 목적론은 수용의 맥락과 성립의 맥락을 혼동했으며, 정사 중심주의는 침묵의 사료에 대한 해석 능력을 빈곤하게 만들었고, 대중적 절대화는 학문적 회의와 검증 절차를 적대의 언어로 오독했다. 그 결과 단기고사 논쟁은 설명의 경쟁이 아니라 낙인의 경쟁으로 흘렀고, 연구는 축적되기보다 소모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 몇 가지 새로운 전제를 채택한다. 첫째, 단기고사를 위서/진서의 단선적 이분법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고대 텍스트는 종종 단일한 저자와 단일한 성립 시점을 갖지 않으며, 오히려 장기 전승·집성·편찬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전부 진서인가 전부 위서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떤 층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었는가”를 묻는 것이다. 둘째, 단기고사를 신화와 역사의 경계선 바깥으로 추방하지 않는다. 고대문명에서 신화는 허구의 반대말이 아니라 정치 질서와 집단기억을 서사화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단기고사의 신화성은 배제의 근거가 아니라 분석의 단서가 된다. 셋째, 단기고사를 한국 내부 논쟁에만 가두지 않는다. 세계 문명사의 시조 신화, 국가 기원 서사, 제정일치 사회의 기록 관행, 장기 계보 서사와 비교할 때, 단기고사는 예외적 기형이 아니라 오히려 보편적 유형의 한 사례로 재위치화될 수 있다. 넷째, AI와 디지털 인문학의 도구를 통해 기존의 인상비평과 선택적 인용 중심 논의를 보다 투명하고 재현 가능한 분석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 책의 구성은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단계적으로 전개된다. 먼저 서론에서는 왜 단기고사 위서논쟁이 다시 검토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기존 연구사가 어떤 전제와 한계를 지녔는지를 점검한다. 이어지는 본론의 초반부에서는 문헌적 실체, 저자 문제, 문체 문제, 연대 과장과 신화성 논쟁을 다룬다. 여기서는 단기고사를 둘러싼 주된 위서 논거를 가능한 한 엄밀하게 정리하고, 그 논거들이 실제로 얼마나 설명력을 가지는지를 검토한다. 특히 연대 과장, 신화성, 정치적 목적론이라는 오래된 논거들이 과연 고대 문헌을 다루는 데 적절한 기준인가를 비판적으로 따진다.
중반부에서는 단기고사의 진서 가능성과 사상사적 일관성을 고대 동아시아 문명사라는 더 넓은 틀 속에서 분석한다. 『산해경』, 『사기』, 『후한서』, 일본 및 만주계 자료와의 비교는 단기고사를 직접 입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기고사가 완전히 고립된 근대적 위작이라는 가정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어 천·지·인 삼재 사상, 통치 윤리, 교화 이념, 고대 정치철학적 성격을 분석함으로써 이 텍스트가 단순한 민족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일정한 사상적 내적 일관성을 가진다는 점을 밝히고자 했다.
후반부에서는 이 논쟁을 한국 고대사 인식의 구조적 문제, 민족서사와 학문 사이의 긴장, 위서 개념의 역사적 변천, 학문정치학, 공공역사와 미디어 환경, 그리고 AI·디지털 인문학 시대의 새로운 검토 가능성이라는 차원으로 확장한다. 여기서 단기고사 논쟁은 더 이상 고대사 일부의 주변적 분쟁이 아니라, 한국 역사학 전체가 직면한 구조적 난제의 응축판으로 드러난다. 어떤 사료를 정통으로 인정하고 어떤 기억을 주변화하는가, 어떤 질문이 학문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