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문 좀 열어줘! 〈실화를 바탕으로〉
서울, 1990년 10월, 하교길 좁은 한옥 골목에서 붉게 녹슨 철 대문을 마주합니다. 평소와 달리 핏빛으로 물든 기괴한 노을이 골목을 덮치던 그 순간, 굳게 닫힌 철 대문의 틈 사이로 한 여인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을 건넵니다.
"학생... 문 좀 열어줘."
검은 한복을 입고, 노을 아래에서도 그림자가 지지 않던 무표정한 여인. 그녀의 간절하면서도 명령조인 속삭임에 홀리듯 문고리로 손을 뻗으려던 순간, 그는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며 도망칩니다.
다음 날, 그는 그 집 철대문에 걸린 하얀 상등(喪燈)을 발견합니다.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밝혀진 충격적인 진실. 그 아주머니는 아들을 마중하기 위해 마당에 서 있다가,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먼저 숨을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소름 끼치는 사실. 그녀가 그토록 기다리던 죽은 아들은 1972년생 쥐띠, 바로 이연구와 동갑이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아들을 기다린 것일까, 아니면 아들과 닮은 나를 그 차가운 어둠 속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것일까? 내가 문을 열어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날의 거절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36년 동안 그를 따라다니는 '신(神)의 그림자', 즉 '신기(神氣)'의 시작이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가위에 눌리고,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며 고통받던 그는 결국 무속인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그 검은 한복의 여인이 여전히 자신의 그림자 속에 붙어있음을 확인합니다.
"그 여자의 한(恨)을 글귀로 써서 풀어내야 해. 그래야 자네도 살고 그들도 안식할 걸세."
무속인의 조언에 따라, 그는 도망치기를 멈추고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입니다. 1990년 그 가을, 내가 열지 않았던 그 '문'. 이 책은 그 소년이 살지 못한 나머지 생의 그림자를 짊어지고, 영매(靈媒)가 되어 써 내려간 서글픈 위령제이자, 마침내 공포와 화해하고 자신의 삶을 복원해 나가는 한 인간의 치유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