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심장 승정원, 사관의 붓끝이 한 남자의 이름을 쫓기 시작한다.
장원급제부터 수군절도사, 도승지를 거쳐 좌찬성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관복이 바뀔 때마다 그의 목숨은 권력의 심연 속으로 위태롭게 가라앉는다.
관직의 무게가 더해질수록, 역설적으로 그를 겨눈 칼날은 더욱 가늘고 날카로워졌다.
무오와 갑자, 두 번의 피바람을 견뎠다.
연산군의 광기 어린 폭정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시무십조(時務十條)를 올렸으며, 천지가 뒤집히던 중종반정의 밤에는 나헌(懶軒)의 마루에서 시대의 격변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그는 스스로를 ‘게으른 집’이라 이름 붙인 서재에서 남몰래 칼날을 갈았다. 그것은 누군가를 베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직 살아남아 진실을 기록하기 위한 처절한 인내였다.
사후에 받은 시호 소안(昭安). ‘밝게 살피고(昭) 안온하게 다스렸다(安)’는 그 짧은 두 글자 뒤에는,
조선에서 가장 위태로운 시대를 가장 치열하게 건너온 한 남자의 위대한 생존 전략이 숨겨져 있다.
고령신씨 소안공파의 시조가 된 인간 신준, 그가 붓으로 써 내려간 서늘한 기록의 미학이 지금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