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나주, 회화나무 그늘 아래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가진 것이라곤 총명함과 붓 한 자루뿐이었으나, 그것으로 세상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한양으로 올라와 과거에 장원하고 또 장원하며, 조선이 낳은 가장 빛나는 학자 반열에 섰다. 집현전, 세종이 세운 학문의 전당에서 그는 성삼문을 비롯한 동료들과 밤을 새워가며 글자를 다듬었다. 스물여덟 자모. 백성의 말소리를 글로 옮기는, 이 땅에 전례 없었던 일이었다.
훈민정음 창제는 학문의 정점이었지만, 신숙주의 발걸음은 그 안에 머물지 않았다. 일본으로 건너가 대마도에서 협상을 이끌어내고, 명나라 사행길에서 요동의 노학자와 학문을 논했다. 바다의 풍랑이 목숨을 위협하는 와중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 글자를 만드는 일이나, 나라의 문을 여는 일이나, 그에게는 같은 것이었다. 세종이 그에게 어의를 덮어주며 보냈던 신뢰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문종의 스승으로서, 동방거벽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신숙주의 삶은 학문이 빚어내는 가장 찬란한 궤적 그 자체였다. 스승 윤회에게서 배운 것을 세종의 곁에서 펼치고, 그것을 다시 세자에게 전하는 순환 속에서 그는 조선의 문(文)이 성장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
그러나 세종이 떠났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기둥이 무너지고, 권력의 진공 속에 조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학문으로 세상을 바꾸던 시대는 저물고, 이제는 선택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신숙주의 붓은 아직 건재했으나, 그 붓이 가리켜야 할 방향이 사라진 것이다.
문(文)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이 눈앞에 있었다. 훈민정음, 동국정운, 일본과 명나라를 잇는 외교의 성과. 그러나 그것을 지켜내는 일은 전혀 다른 결단을 요구했다. 붓을 내려놓고 칼자루를 잡아야 하는 순간이, 보한재의 문턱을 넘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