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서른셋의 서지우는 등기부등본 한 장을 3초 동안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3초에 전세보증금 1억 4천만 원이 사라졌다. 법원에서 돌려받은 것은 육백사십만 원과, 자신이 속은 것이 아니라 못 읽었을 뿐이라는 뒤늦은 자각이었다.
지방 중소도시의 작은 중개사무소에 보조원으로 들어간 첫날, 지우는 자신이 당한 일을 하마터면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저지를 뻔한다. 그날부터 지우는 매일 밤 부동산을 독학한다. 소장이 던져준 용어 300개, 도서관에서 만난 은퇴한 도시계획 공무원이 적어준 열 줄의 순서, 그리고 자기가 당한 자리에서 직접 뽑아낸 여덟 줄의 원칙.
일 년째 되던 봄, 어머니가 신도시 상가에 퇴직금 3억을 걸었다는 전화가 온다. 논 한가운데 세워진 컨테이너 모델하우스, 자본금 오천만 원짜리 시행사, 구독자 사십만 명의 유튜버가 보증하는 확정수익 8퍼센트. 지우에게 남은 시간은 잔금일까지 365일이고, 어머니를 설득할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이 소설은 아무것도 사지 않는 것으로 끝난다. 지우는 끝내 자신이 옳았는지 알지 못하고, 어머니는 오천삼백만 원을 잃는다. 그것이 지우가 계산해낸 가장 작은 손실이었다.
본문 중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 중개사가 종이 세 장을 지우 앞으로 밀었다.
"등기부 한번 보실게요."
2021년 4월이었다. 화곡동 다세대주택 3층, 방 두 개, 보증금 1억 4천. 지우는 스물아홉이었고, 그 돈은 지우가 여섯 해 동안 모은 전부에 부모가 보탠 사천을 더한 것이었다.
종이는 A4였고 흑백이었고 표가 그려져 있었다. 맨 위에 표제부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 갑구. 그 아래 을구.
을구 칸에는 줄이 두 개 있었다.
근저당권설정 / 채권최고액 금 일억팔천만원 / 근저당권자 ○○신용협동조합
지우는 그걸 봤다. 봤다는 건 눈이 그 위를 지나갔다는 뜻이다.
'채권최고액'이라는 네 글자에서 시선이 잠깐 걸렸다. 채권은 아는 단어였다. 최고액도 아는 단어였다. 두 개를 붙이니 모르는 단어가 됐다. 지우는 그 순간 이렇게 생각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이런 건 원래 다 있는 거겠지.
"근저당이 좀 있긴 한데요." 중개사가 말했다. "뭐 이 정도면 괜찮아요. 여기 집주인 분이 건물 세 채 갖고 계시고, 이 동네 이런 물건 다 이래요."
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를 본 시간은 3초였다. 나중에 지우는 그 시간을 여러 번 세어봤다. 두 눈이 을구 위를 훑고, 모르는 단어에서 잠깐 멈추고, 고개를 든다. 3초.
3초에 1억 4천만 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