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이 지나간 뒤의 청송 지경리를 다시 찾은 나는 불에 그을린 먹감나무 농짝 앞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나는 부산에서 경북 청송군 파천면 지경리로 보내져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게 된다. 처음에는 낯설고 두려웠지만 시호 오빠와 뛰놀고, 감나무 아래서 홍시를 줍고, 징검다리를 건너며 점차 마을의 계절 속에 스며든다.
가을이면 감 개수를 세고, 겨울이면 처마 밑 노루를 무서워하며, 봄이면 쑥 냄새와 논물 소리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말수 적은 할아버지는 장날마다 내 몫의 선물을 챙겨주고, 할머니는 늘 밥상과 먹을거리를 살뜰히 챙긴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그 사랑을 몸으로 기억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자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게 된다. 떠나는 버스 안에서 끝까지 감나무를 바라보던 기억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다. 현재의 나는 불탄 지경리에서 그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이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작품은 사라진 고향과 말없이 건네지던 사랑을 감나무와 흙냄새, 계절의 풍경 속에 담담하게 복원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