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500일이나 여행할 계획은 없었습니다. 치앙마이와 나트랑을 각각 다섯 번 이상 찾았고, 방콕과 다낭을 오가며 태국과 베트남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 지냈어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캄보디아, 호주까지 여행했고, 국내에서는 광양과 통영을 비롯해 부산과 대전에도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한 도시에서 다음 도시로 이어진 시간이 쌓여 어느새 500일이 되었더라고요.
여자 혼자 동남아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필요한 물건만 남겼고,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들며 생활했습니다. 여행 인플루언서로 숙소와 관광지를 소개하고, 국내에서는 지자체의 한달살기와 워케이션 프로그램에도 참여했어요.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자유는 좋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다가 보이고, 일이 끝난 뒤에는 처음 걷는 골목을 구경할 수 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이동할 때마다 숙소와 교통편을 알아봐야 했고,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 마음이 조급해지는 날도 있었어요. 여행과 일이 겹치면서 쉬고 있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을 때도 있고요.
어느새 500일의 여행이 끝났습니다. 왜 혼자 떠났는지, 적은 물건으로 사는 생활은 어땠는지, 여행하면서 돈을 벌 수 있었는지, 여행 인플루언서라는 직업의 현실은 무엇이었는지 차분히 정리해 보고 싶었어요.
여행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숙소 예약자 명단에 제 이름이 없었고, 공항을 잘못 찾아갔으며, 아이패드를 비행기에 두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캐리어가 부서지고 호텔에 경찰이 찾아왔으며, 주방이 있는 줄 알고 예약한 방에는 주방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당황하고 속상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되었어요.
1부에는 500일 동안 여행하며 배운 것과 디지털노마드로 살아 본 현실을 담았고요. 2부에는 기억에 남는 실수담을 정리했습니다.
이 책은 500일 동안 어디를 다녀왔는지 보여주는 여행 목록이 아니에요. 한국을 떠나 살았던 시간을 돌아보며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내려놓았는지 기록한 여행 리뷰에 가깝습니다.
이제야 500일의 여행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잘한 일보다 서툴렀던 순간이 더 많이 떠오르네요. 그 시간까지 모두 제 여행이니까요.
여행이 꼭 500일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하루였든, 한 달이었든, 지나온 시간을 한 번쯤 기록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내 읽으면, 그 기록은 또 다른 여행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안녕, 나의 500일.